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82년생 김지영은 계속된다책 한 주 2019. 12. 1. 13:02
2017년 6월, 조남주 작가의 책 '82년생 김지영'의 영화화 소식이 알려지면서 포털 사이트는 한동안 들끓었다.
페미니스트가 아닌 나 또한(누군가 "꼭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알고 보면 페미니스트더라"라고 말하는데 부끄럽게도 그 당시 페미니스트가 정확히 무슨 뜻인지 몰랐던) '82년생 김지영'과 '조남주'가 실시간 검색어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것으로 기억한다. 그때는 '아, 그렇구나. 근데 왜 이렇게 난리지.'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영화가 나온 뒤 책을 정독할 기회가 생겨서 읽어보니 왜 그런 상황이 발생했는지 단숨에 이해할 수 있었다.
책 표지를 보자마자 묘한 이질감을 느꼈다. 82년생이라 하면 90년대 후반생인 나와는 열 몇 살 정도 차이가 날 것이고, 부모님과는 이십 년 정도의 거리가 있다. 보는 이 마저 우울하게 만드는 회색 티를 입은 여인의 뒤로 길게 드리워진 검은 그림자. 내용을 읽지 않아도 82년생 김지영의 지난한 삶이 예상되었다. 그리고 그것은 내 상상을 초월했다.
높은 직책은 남자가 맡는다는 것, 초등학생의 김지영씨를 괴롭히던 남자아이를 두고 '네가 좋아서 그런다며' 그를 두둔하던 담임 선생님, 남초 동아리에서 여자는 가만히 있어주는 게 도와주는 거라던 말, 육아를 위해 자신의 직장을 포기한 아내에게 미안한 감정을 느끼면서도 자신의 밑에서 일할 간호사로 남자를 고려하던 의사.
충격적이다. 더 놀라운 것은 나 역시 당연하게 생각했던 점들이 있다는 것이다. 책 표지를 보았을 때만 해도 82년생 김지영과 나의 시대는 동떨어졌다고 여겼는데 말이다. 특히 학창 시절 때 교복이 그러했다. 학교 다니면서 단 한 번도 교복 바지를 입어본 적이 없다. 체육복 바지를 입고 있으면 어김없이 학생주임이 달려와 체육시간 외에는 교복 치마를 입으라고 소리쳤다. 분명 교복 치마가 불편하다는 생각이 있었다. 그런데 감히 학생주임의 말에 토 달 생각을 못 했다. 남자는 바지 여자는 치마. 이것이 너무나도 당연했다. 근데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.
82년생 김지영은 계속된다. 물론 그 방향은 전보다 나은 결과가 되어야 할 것이다. 그리고 실제로 그렇다. 일례로 82년생 김지영의 학창 시절 속 미화부장은 여학생이, 체육부장은 남학생이 했다고 나온다. 하지만 요즘은 그렇지 않다. 여학생이 체육부장을 하는 일이 흔하다. 어쩌면 진작 그랬어야 할 결과지만 그래도 나아진 게 어디냐며 마음 한 구석이 편해졌다. 남은 82년생 김지영을 고치고 개선해 나가는 몫은 현세대인 우리의 과제다.
더 이상 음울한 뒷모습이 아닌 밝게 웃으며 뛰노는 그런 82년생 김지영이 될 수 있도록 우리 모두, 함께 노력해야 한다.